[수필] 무궁화꽃
우리 집 담은 무궁화 꽃나무이다. 이른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청푸른 잎사귀를 피워낸다. 튼실한 꽃잎이 여러 겹인 무궁화꽃은 봄을 알리며 많은 꽃을 피워낸다. 앞마당에는 일년생 꽃을 심으며 땅에 천연영양제 비료를 사다 뿌려주고 있는데, 무궁화는 그러한 영양제 없이 추운 겨울엔 눈을 친구삼아 여름엔 비와 햇빛만 있으면 아무 손 갈 곳 없는 나무다. 사전을 찾아 우리나라의 국화(國花) 무궁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무궁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가 아닌 백성이 흔하게 심고 가꾸는 꽃이라 우리나라 국화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계속해서 피고 또 피는 꽃이라 일편단심이라도 한다. 튤립은 네덜란드, 벚꽃은 일본, 연꽃은 스리랑카, 에델바이스는 스위스인데 우리나라는 백성의 꽃 무궁화다. 고조선까지 올라가면 〈단기고사〉에 무궁화를 근수(謹守)라는 기록이 나온다. 고대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과 〈고금주〉에는 무궁화가 한반도에 많이 자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31대 공민왕 때의 문신, 익제(益齊) 이재헌의 저서 익제난고(益齊亂藁)에 무궁화꽃 울타리가 나온다. 시 제목은 이다. 강산산여담소미 인가처처근화난(江上山如淡掃眉 人家處處槿花難) 정주욕문송간사 책장선규죽하지(停舟欲問松間寺 策杖先窺竹下池) 범영모연방초원 종성효출백운지(帆影暮連芳草遠 鐘聲曉出白雲遲) 빙란일망삼오소 상상장군입마시(憑欄一望三吳小 像想將軍立馬時) -고고산(高高山), 전문 강 위에 솟은 산은 미인의 눈썹 같은데/이 마을 저 마을 집집마다 무궁화 꽃 울타리 배 멈추고 송림 속의 절을 찾는데/대숲 밑에 연못이 눈에 뜨이네 해질녘엔 돛단배들 줄이어 돌아오고/동틀 무렵 은은한 종소리 흘러가는 흰구름 정자에 앉아 멀리 삼오(三吳)지방을 바라보면/장군이 거기 주둔하던 일 새삼 생각나네 지금도 변함없이 생활하고 있는 이 집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한국에 살 때는 무궁화꽃나무를 자주 본 기억이 없다. 땅이 적어서 그런 것인지 동네에 무궁화가 몇 그루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민 와서 아파트에 살다가 개인 집으로 이사 오면서, 한국에만 있을 줄 알았던 국화(國花) 무궁화 꽃나무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것도 처음으로 우리의 집을 구입하는데 말이다. 그 당시 화사하게 핀 보랏빛, 분홍빛, 하얀 무궁화꽃이 우리 부부를 보고 활짝 웃고 있던 기억이 난다. 아내와 함께 구입하고자 하는 집 내부는 대략적인 것만 기억나고 무궁화 담만 계속해서 눈에 밟혀왔다. LA에 있는 한 분은 먹고살기 바빠 고국에 갈 수 없었다. 해서 대문 입구에 무궁화 한그루를 심고 새싹이 돋고 꽃이 필 때마다, 찬바람에 잎을 떨어뜨릴 때마다 사랑하는 고국에 있는 가족을 보는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다는데 말이다. 아내와 나는 이 집이 우리의 ‘Home Sweet Home!’이라고 결정했다. 특히 아이들의 학교도 부근 동네라 편안한 마음으로 이 집을 구입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집집마다 무궁화꽃이 만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미국의 이민생활은 타향살이하는 기분이 드는데 무궁화 꽃이 동네 가득하니, 우리가 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자연히 딸아이와 꼬맹이 아들도 미국인 친구들과 학교에 오가며 무궁화꽃을 손짓하며 저 꽃이 대한민국의 나라꽃이라고 설명하며, 두 어깨를 으쓱해 하는 딸아이와 꼬맹이 아들의 얼굴이 선하게 다가온다. 20년 넘게 이 집에 살면서 함께하는 무궁화꽃이 우리가 한국인 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 우리 부부는 딸과 아들에게 그랬듯이 이들이 결혼하고 손자·손녀가 탄생해 아장아장 걸음걸이를 시작할 것이다. 아내와 나는 또다시 눈 오고 바람 불고 비가 와도 단단히 박혀 있는 무궁화의 은근한 끈기의 인내가 대한민국 한민족 정신이라고 당당하게 가르쳐 줄 것이다.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무궁화꽃을 주워 담아 쓰레기통에 넣는다. 신광수 / 수필가수필 무궁화꽃 무궁화꽃 울타리 무궁화 꽃나무 무궁화 한그루